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게리 카터 (문단 편집) === [[몬트리올 엑스포스]] 시절 === || [[파일:external/montrealexposcards.files.wordpress.com/1982-topps-730-gary-carter.jpg|width=100%]] || 고등학교 졸업반 때, 몬트리올의 3라운드 지명을 받고 1972년 입단했다. 당시 [[미식축구]]로 UCLA 입학 직전까지 간 상황이었지만, 미식축구를 포기하고 야구를 선택했다. 원 포지션은 유격수지만, 팀에서 그를 포수로 전환시키면서 마이너리그에서 포수 수업을 받게 되었다. 별명은 꼬마(Kid)인데, 스프링캠프에서 매번 이기려고 아둥바둥대는 모습이 꼭 꼬마들이 이기려고 기를 쓰는 모습과 같다고 해서 팀 선배들이 붙여준 별명이라고 한다. 생각보다 포수 수업을 빨리 끝내고 1974년부터 메이저리그의 맛을 보기 시작해 1975년에는 17홈런 68타점을 기록하며 그 해 올스타에도 선발되었다. 다만, 이 때 그는 포수 마스크를 쓰지는 못했고, 주전 [[우익수]]로 주로 나섰다. 손가락 부상으로 1976년을 날린 후, [[안드레 도슨]]을 위시한 재능있는 외야수들이 늘어나자, 마침내 팀은 주전 포수를 트레이드 시킨 후, 게리 카터에게 주전 포수 자리를 맡겼다. 카너는 팀의 기대에 부응해, 첫 주전 포수가 된 1977년 31홈런을 날리면서 활약했고, 그 뒤로 꾸준한 공격력을 선보였다. 그리고 기대하지 않았던 수비력까지 괜찮은 평가를 받으며, 몬트리올 시절 세 번씩 [[골드 글러브]]와 [[실버 슬러거]]를 수상하며 공수 양면에서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포수로 떠올랐다. 이 때의 활약으로 인해 마침 하향세를 그리던 [[자니 벤치]]를 제치고 올스타전 선발의 영광도 얻었고, 1981년과 1984년 두 차례 올스타전에서 맹활약하며 MVP에 올랐다. 그리고 1981년 몬트리올의 유일한 PO 진출에도 힘을 보탰고, PO에서도 4할이 넘는 맹타를 터뜨렸지만, 팀은 아쉽게도 월드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했다. 그 뒤 몬트리올이 하향세를 그리자 팀은 리빌딩을 위해 최고의 유망주를 뽑아낼 수 있는 올스타 포수를 카드로 쓰기로 결정했고, 게리 카터는 그렇게 해서 1:4 트레이드로 1984년 11월 [[뉴욕 메츠]]로 이동하게 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